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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필독

즉시 2022. 1. 28. 00:48

오늘날 이 세상에는 수백만 개의 종교가 존재합니다. 수백만 개의 종교가 성경의 구원 방법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살펴보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된다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가시로 된 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에 못 박히셨습니다. 턱수염이 뿌리 채 뽑히고 군인들의 채찍질에 등이 길게 파였습니다. 주님은 두 범죄자 사이에 매 달리셨습니다. 성경은 이들이 범죄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 다. 당시 유대를 지배했던 로마 정부는 사악한 정부였습니다. 우상숭배를 조장했으며 도덕 기준은 낮았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이 두 범죄자는 살려둘 수 없는 자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심지어 감옥에 가둬 두기에도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거해 버릴 수밖에 없는 사악하고 쓸모없는 자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매달린 범죄자 중의 하나는 그분을 욕하며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 이거든 네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다른 하나는 되받아서 그를 꾸짖으며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합당한 보응을 받으니 참으로 공정하게 정죄를 받거니와 이 사람은 아무 잘못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고 예수님께 이르 되,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 23:39-43)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은 침례를 받지 않았고 받을 수도 없었지만 죽음 이후에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되었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회에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다양한 교회들이 있고 저마다 자기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합니다. 하지만 본문에 나온 사람은 교회에 다녀본 적도 없고 교회에 회원으로 가입한 적도 없으며 어떠한 것도 할 수도 없었지만 죽은 후에 바로 낙원으로 갔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선한 일,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악한 일보다 선한 일이 더 많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본문에 나온 사람은 사악한 세상 정부도 살려둘 수 없다고 판단할 만큼 악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악한 일을 덮을 만큼 선한 일을 한 적도 없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쉰 뒤에 곧바로 주님 앞에서 눈을 떴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사악한 세상 정부마저 살려둘 수 없다고 판단한, 평생 사악하게 살아온 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종교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몰몬교는 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몰몬교의 기본적인 다섯 원리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죽은 후에 낙원에 갔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도 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파수대를 판매한 적도 없고 팔러 다닐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죽은 후에 예수님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가톨릭도 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칠성사 중 어떤 것도 한 적이 없고 심지어 종부 성사를 하지 못한 채 죽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죽은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예수님과 함께 거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침례를 받은 적도 없고 세례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지금 이 시간에도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이슬람도 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마호메트를 위해 폭탄테러를 벌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불교도 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 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참선을 하거나 고행을 하거나 달관의 경지에 오르 거나 득도를 한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에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종교 행위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당신에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선포하겠습니다.
구원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습니다. 구원은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어느 시대를 사는 어느 누구도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종교에 속했건, 무슨 종교 행위를 한다 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선행을 통해서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을 만큼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온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제나 신부나 랍비나 이맘이나 목사들 중에는 구원받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지만 이 사람이 십자가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유일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오직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침례나 세례나 성사나 촛불이나 성상이나 파수대나 교회나 목사가 없어도 충분히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선행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의 손은 십자가에 못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메카를 향해 절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사람의 발은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예수님께 소망을 두는 것 외에는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회개 하고 믿는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했습니다. 회개하고 믿는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단순한 신앙 고백으로 자신의 혼을 지옥에서 영원히 건져낼 수 있었습니다. 어떠한 종교 행위나 선한 행위도 없이, 어디에 분향하거나 돈을 갖다 바치거나 삼천 배를 하거나 면죄부나 종교적인 물품을 구매하지도 않았지만 구원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에게 필요한 유일한 분은 예수님이었는데 바로 그 예수님께서 이사람 옆에 계셨고 이 사람은 그 예수님을 놓치지 않고 주님이라고 부르며 붙들었고 구원받았습니다.

이 세상은 혼란으로 가득합니다. 온갖 목소리가 난무합니다. 같은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다양한 구원방법을 가르칩니다. 본문에 나온 사람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그가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유일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그 한 가지 일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낙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혹시 예수님을 믿는 것,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통해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주위에는 불행하게도 자신이 다른 방법을 통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지옥에는 가지 않을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어느 정도 괜찮은 사람이면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본문에 나온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을 만큼 끔찍한 죄를 지은 범죄자였습니다. 그는 새로운 삶을 살거나 마음을 고쳐먹거나 더 나은 인생을 사는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었습니다.
가운데 십자가에 달린 분에게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그는 정확히 필요한 것을 구했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가족 중에 병든 사람이 있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대단한 종교 행위나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닙 니다.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해 볼 수도 없습니다. 만일 이 세상 종교들이 진리라면 이런 분들에게 희망이 있을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병원 중환자 실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어떤 희망이 있겠습니까? 선행을 할 수 있겠습니 까?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이 코앞에 닥친 사람이 무엇을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일분 후면 저 세상으로 가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에게 희망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런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할 수 없고 인생이 끝나기 1분 전인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종교를 갖거나 교회에 가거나 지은 죄를 되돌리거나 무엇인가를 다시 하거나 인생을 다시 살 수는 없지만 구원받을 수는 있다고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행한 선행이 악행보다 많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으며 누가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희망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본문에 나온 사람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감옥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는 순간까지 고통을 당했지만 더욱 두려운 사실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영원히 당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 정부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희망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에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렸습 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 했습니다. 의사가 와서 그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사형 집행인에게 전하기도 전에 그는 구원받은 채 낙원에서 눈을 떴습니다.

저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본문에 나온 사람이 제시했다고 믿습니다. 모든 종교와 철학과 설교와 인생과 하늘나라와 지옥에 대한 해답을 이 사람이 제시했다고 믿습니다. 이 사람은 모든 종교가 요구하는 그 어떤 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할 수도 없었습니다. 선한 삶을 살지도 못했습니다. 좋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좋은 남편도 아니었고, 좋은 아들도 아니었고, 좋은 아버지도 아니었고, 좋은 이웃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도이 사람의 죽음을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지옥이 그를 영원히 삼켜버리려고 기다리고 있을 때 이사람은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분께서는 죄인 한 사람을 더 구원하셨습니다.


1.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39절을 보면 이 사람은 아무런 소망도 없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구원받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자신에게 아무런 소망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면 결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종교가 자신을 구원해 줄 거라고 생각하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 위에 달려 죽어가고 있던 범죄자처럼 자신 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분을 절대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해 경고하지 않는 설교자는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회개하라고 설교하지 않는 목사야말로 회개해야 합니다. 지옥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 설교자들은 본분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려면 먼저 자신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으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지옥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독자 중에 자신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께서 지금 마음속에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해 바로 볼 수 있어야 하나님에 대해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고, 그 뒤에는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볼 수있어야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젊은 사람들은 죽음이 오지 않을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가고 세월이 흐를수록 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직 십대나 이십대인 분들은 죽음이라는 말이 와 닿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경고 없이 찾아옵니 다.“ 오십 년 후에 죽음”이라든지“ 삼십 년 후에 죽음”이라든지“ 칠 년 후에 죽음”이라는 식의 경고는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삼십 년은 더 살겠지 생각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삼 년인 경우도 있고 오십 년은 더 살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오 일인 경우도 있습니다.

확실한 점은 우리가 모두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에 나온 사람은 죽음이 임박하게 되어 그것을 실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사람은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이나 나이든 어떤 사람이나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누군 가가 죽을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실감하고 있습니다. 아마 십자가 밑에는 이 사람의 가족들도 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어머니는 이 사람을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과거에이 사람이 물건 훔칠 때 망을 봤던 사람도 십자가 아래에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도 이 사람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로마 군인들도 있었지만 당연히 이 사람을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도 자신을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얻어맞아 얼굴에 피를 흘리고 있는 분이 보였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있었지만 아무도 욕하지 않았고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다고 하지도 않았고 불평하지도 않았고 내려 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마치 털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양 같이 잠잠했습니다. 가운데 십자가에 달린 그 사람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 같았습니다. 하지만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2.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신 사람을 보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 했습니다.

“ 다른 하나는 되받아서 그를 꾸짖으며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0절) 

우리는 신성모독적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조롱합 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 농담이나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옆집에 사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쯤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죽음에 직면하자 매우 중요한 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매우 두려운 분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 하나님은 아무 상관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는 사람 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보고 계시며 상관하십니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순수하시고 거룩하시며 순결하시고 그분이 거하시는 하늘나라는 죄가 없는 곳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살인이나 간음이나 강간이나 유괴나 거짓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거룩하신 분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은 죽어가는 가운데 예수님을 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죽음에 대해, 하나 님을 만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고 걱정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성경은 걱정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지옥 불이 예수 그리스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지옥에 가느니 차라리 손을 잘라버리는 것이 낫다고 말씀합니다. 눈을 뽑아버리는 것이 낫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지옥과 하나님의 심판은 그만큼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마귀의 거짓말일 뿐입니다. 그것이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죽어서 알게 되면 너무 늦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막 9:4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죽으면 결코 없어져 버리거나 사라져 버리지 않습니다.


3.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공정하게 정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41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합당한 보응을 받으니 참으로 공정하게 정죄를 받거니와…”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정죄를 받았을 뿐 아니라 공정하게 정죄를 받았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옥에 보내실 뿐 아니라 그러한 판결이 공정하고 정당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자신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공정 하고 정확하게 심판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는데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시고 그분의 심판은 공정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구원받았습니다. 성경은 제가 죄인이며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공정하게 정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죄에 대해 분노하고 계시며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하실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죄에 대해 아무런 분노도 하지 않으시고 괜찮 다고 생각하신다면 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죽이셨겠습니까? 만일 당신의 죄를 가볍게 생각하시거나 별로 상관하지 않으셨다면 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당신을 대신해 고난을 받고 죽게 하셨겠습니까? 모든 죄는 하나님 앞에서 큰 문제입니다.

본문에 나온 사람은 자신이 행한 일에 합당한 보응을 받으며 참으로 공정하게 정죄를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하지 않으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은 지옥에 가기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고백을 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자신이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은 죽으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은 하늘나라에 가기에 합당하지 않은 존재였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십자가에 달렸던 다른 범죄자는 절도와 살인으로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지옥에 갔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당하는 일이 모두 정당하기에 아무런 불평을 할 수없다고 고백했습니다. 도둑질과 살인은 모두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인데 자신이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행위와 말과 생각과 마음과 인생을 달아보니 자신이 합당 하게 정죄를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말과 행위와 생각과 마음과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해 본 적이 있습니까? 자신을 비하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현실을 똑바로 보라는 것입니다.


4.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무죄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이 사람이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41절 뒷부 분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합당한 보응을 받으니 참으로 공정하게 정죄를 받거니와 이 사람은 아무 잘못도 행하지 아니 하였느니라.” 이 사람이 전에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본 적이 있었거나 성경을 가르치시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죽기 바로 직전에 자기 옆 십자가에 매달린 분이 죄가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이 사람이 알았다는 점입니다. 자기 옆에 매달린 분이 의로운 분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죽어서는 안 되는 분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신은 죽어 마땅하지만 그분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 습니다. 자신은 불의하지만 그분은 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전에는 이러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예수님은 의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자기와 완전히 다른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어떤 사실을 알게 되는지 아십니까? 예수님과 비교해보니 자신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이 죄인인지 몰랐는데 예수님을 만나 그분과 자신을 비교해보니 자신은 더럽고 추악하고 비참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도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제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 그분과 비교해보자, 그분 앞에서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제 옆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는 저도 자신을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옆에 오시자 나는 형편없는 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까? 만일 아직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왜 그런지 제가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당신처럼 의롭지 않고 불의하고 더럽고 추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니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회색도 검은색 옆에 있으면 흰색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하얀 색이 옆에 오면 즉시 회색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은 평생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렸습니다. 그래서 죄에 죄를 더하며 살아도 자신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옥에 가도 자기보다 더 나쁜 사람들을 보며 자신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옆에 오시고 그분과 자신을 비교해보니 진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추하고 비참한 죄인인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님과 자신을 비교해 본 사람은 모두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다른 사람 들과 비교해보면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예수님과 비교해보니 자신은 완전히 시커먼 죄로 얼룩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면 볼수록, 그분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분의 거룩함과 의로움에 압도당하게 되며 결국 자신은 얼마나 불의한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당신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절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비교해 봐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자신을 비교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기준은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이나 당신이 아는 사악한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신 분과 자신을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진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5.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본문에 나온 사람은 소망도 없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죄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사악한 자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는 이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42절을 보겠습니 다.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 하옵소서, 하매 변개된 성경들 중에는“ 주여”라는 말이 삭제된 것들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삭제해 버린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 하게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3)고 말씀하는데 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가장 중요한 부문을 없애 버린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정죄 받았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적금을 해약해서 교회에 갖다 바쳤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수도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도 십원 한 장 바칠 수 없었습니 다.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받는 것이었습니다(롬 10:10). 그래서 이 사람은 믿는 마음으로 주님을 불렀습니다.

여덟 살짜리 어린 아이도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죽음을 바로 직전에 둔 사형수도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주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자랑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엡 2:9).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었다면 당신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든, 얼마나 잘못된 인생을 살았든 상관없이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6. 구원받기 위해서는 주님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주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단순히 주님이라고 부르기만 한것이 아니라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성경은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롬 10:9) 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는 같은 진리를 다른 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고전 15:3-4)

이 사람의 고백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이 사람은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을 보고 이런 고백을 한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자신처럼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봤습니다. 매를 맞고 채찍을 맞고 머리에 쓴 가시관 때문에 피를 흘리는 사람을 봤습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사람을 봤습니다.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 위에서 죽어 가던 사람을 봤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이 자기처럼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고“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왕국을 세우지 못하고 가신 것이 참으로 원통합니다.”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죽어가는 분을 보고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 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믿은 지 아십니까? “나는 저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저분은 계속해서 죽은 상태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은 저렇게 계시지만 자신의 왕국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실 것이다.”라고 믿은 것입니다. 아무도 죽어서 저 세상으로 가는 사람에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부탁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주님께서 부활하실 것과 왕국을 가지고 계신 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라.”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성모마리아상 앞으로 가서 묵주 기도를 해라.”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한 달에 파수대를 백 권씩 팔아 와라.”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지역교회의 회원으로 가입해라.”
예수님은 이런 식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42-43절)

 

이것이 바로 모든 종교와 죽음과 하늘나라와 지옥과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입니다.

본문에 나온 이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교회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어떤 목사도 만날 수 없었습니 다.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신 분만이 이 사람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었고 낙원에 데려다 주실수 있었고 죽음 이후에 새로운 생명을 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예수님께 이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 주님으로 받아들인 날 구원을 받았습니다. 당신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인 날 구원을 받습니다. 당신도 오늘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3)

당신은 자신이 아무런 소망 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자신이 정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의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죽어가는 사람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까? 만일 당신이 그렇게 한 날이 있다면 그날 영원한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렇게 한 적이 없다면 오늘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유일하게 한 가지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구원 받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그 한 가지 뿐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았습니다. 이 사람이 구원받았다면 당신이 누구라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구원받았습니다. 당신도 구원받았기를 바랍니다.